배꼽은 슬픔을 오롯이 알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시]
배꼽
김경숙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말
어쩌면 당연한 말이다
배꼽이란 열었다가 다시 닫아놓은 문이다 떨어져 나오면서부터 슬픔을 배웠고 아물어가면서 슬픔이 없어진 그 문 속에서 종종 한 가계의 설계가 이루어지곤 하는데, 문중의 어른들이 둘러앉아 더 튼튼한 배꼽과 질 좋은 배꼽의 생산에 관해 갑론을박이 벌어지곤 한다 그러고 보니 배꼽은 슬픔을 오롯이 알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떨어져 나온 일이나
떨어져나간 일들의 순차가
무던하게 아물어 있는 곳
세상엔 배꼽 없는 배도
배 없는 배꼽도 없다
김경숙_2007 월간문학 등단. 한국바다문학상. 해양문학상, 부산문학대상 수상 외. 시집『빗소리 시청료』『먼지력曆』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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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꼽은 탯줄을 증명하는 하나의 흔적이다.
어미의 몸과 연결됐던 증거인 배꼽을
‘열었다가 다시 닫아놓은 문’으로 묘사한 시인의 사유가 깊다.
‘떨어져 나오면서 슬픔을 배운’ 배꼽에서
‘더 튼튼한 배꼽과 질 좋은 배꼽의 생산에 관해 갑론을박이 벌어지곤’ 하는
폐쇄적인 공간의 문을 떠올리는 비약이야말로 시인이기 때문에 가능한 접근일 터….
배꼽은 정녕 세상의 근원일 지도 모른다.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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