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포럼] ‘탈북인에 대한 사회 편견과 한반도 통일’

세미나 / 안재휘 기자 / 2021-10-15 04:06:45
2021세종포럼 제4차

* 발제 : 오성철(탈북화가, 한남대학교 미술대학 졸업)

[2021세종포럼 제4차] ‘탈북인에 대한 사회 편견과 한반도 통일’
1. 차이에 대한 인간의 속성과 한반도의 통일에 대한 개념보기 2. 탈북인과 북한 3, 탈북인들에 대한 편견의 원인과 사회 관념의 모순 4. 문제의 해석에 대한 프레임 바꾸기




[세종포럼 발제문-2021.9.28]

 

 

탈북인에 대한 사회편견과 한반도 통일

 


-발제자 : 오성철(탈북화가/한남대학교 미술대학 졸업)

-지정토론자 :

김재득(세종포럼 사무국장/중부일보 정치부장)

김영호(미디어시시비비 편집국장)

-토론자(온라인) :

정영택(소설가/미디어시시비비 기자)

윤상영(소설가)

-사회 및 진행 :

안재휘(세종포럼 총무)

 

 

오늘 세종포럼에서 탈북인에 대한 사회편견과 미래 한반도 통일에 대한 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할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더욱이 탈북민 주체인 제가 탈북을 하여 근 10년간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오면서 느낀 편견과 통일의 문제에 대해 다소 주관적인 시각이 개입되어 있지 만 널리 양해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1. 차이에 대한 인간의 속성과 한반도의 통일에 대한 개념보기

 

먼저 사람들의 편견에 대한 사건들이나 사회 통합적 개념과 같은 현상학적 판단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편견은 무엇인가하는 본질론적 문제와 한반도의 통일은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의 문제를 먼저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우리말에 거짓말도 100번 들으면 사실이 된다는 말이 있어요. 인간의 인식체계가 완벽하지 못해서 기억에 의한 해석을 절대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오류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명사도 절대적인 보편성을 가지면 기의(記意)는 사라지고 기표(記標)만 남는 현상이 있어서 스스로의 성찰이 사라진, ‘통일을 주장하는 사회일원이냐 아니냐는 성향 논란에 중심이 옮겨져 통일은 말로만 하는 그냥 그런 개념이 되기 때문이죠.

 

오늘날 북한이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존재임과 동시에 통일의 대상이라는 이중적 의미가 지나치게 강조되어 중립적 개념 속에 갇혀버린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우리는 흔히 통일을 해야 한다고 말은 하지만 스스로 어떤 방식의 통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가지고 합리적인 수단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경직된 사회적 권위 앞에서 자신의 또렷한 입장을 가졌더라도 스스로 목소리를 감추는 사람들이 있고, 전혀 구체적이면서도 합리적 방법론을 모색해보지 못한 래 구호만 요란한 분들도 많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오늘은 생각의 다양성타자의 이질성 존중에 기초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통일에 대한 애매한 포지션에 대해 그리고 사회정치적 명분뿐인 상품으로 전락한 한반도의 평화와 미래에 대해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접근을 해보려고 합니다.

 

통일의 주체는 남한 사회와 북한 사회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상상을 통해 북한 사회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지만 직접적 경험을 할 수가 없습니다.

모든 판단은 선험적 경험과 보편성의 개념적 의사판단을 통합한 공통수로 합리성을 논할 수 있죠. 그러므로 우리 사회에 정착하고 있는 탈북민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02012월 기준 통일부 자료에 의하면 북한을 탈출하여 대한민국에 입국한 탈북민 수는 33500명이라고 합니다.

탈북의 원인은 서로가 다 다르지만, 공통점은 살아가기 힘든 곳에서 살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왔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 분쟁지역에서 살기 위해 탈출하는 난민으로 인식해도 과하지 않죠.

우리나라에 난민이 35000명이 들어와 함께 한 사회일원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그 수가 적지 않으며 이질성으로 인한 문제 또한 많다고 봅니다.

그중에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 된 탈북민에 대한 편견이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생활비나 작업비용이 필요할 때면 공사장 인부로 일할 때도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함께 일하시는 인부들이 이런 말을 합니다.

너는 발음이 서울 말씨와 다르고 그래서 말을 될수록 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보편적 인식에 중국 동포는 한국인보다 조금 아래로 보고 탈북민은 그보다 더 아래로 보기 때문에 온전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

그런 말을 한 번도 아니고 여러 곳에서 여러 차례 들으면 좀 생각이 깊어집니다. 어떤 문제도 한사람이 말하면 그 사람의 주관적 판단이라고 여겨지지만 여기저기 많은 사람이 말하면 보편성을 띠게 되고 그것이 보편적 사회 인식이라고 여겨지니까요.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자크 라캉(Jacques Lacan)인간은 욕망의 주체이며 욕망은 차이의 수단이라는 말은 적절합니다. 그래서 그 편견과 차이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앞서 욕망이론을 쓴 자크 라캉의 글을 언급했는데 인간의 속성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의 프레임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누구나 평등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호모사피앤스의 저자 유발하라리는 누구나 평등했다면 인류는 멸종했다고 말한 바 있지요. 말하자면 생명의 역동성은 평등이 아닌 차이의 성취감에서 나오기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누구나 불안하기 때문에 안정성을 선호하지만, 불안으로 인해 인간은 오히려 성취감을 느낄 수 있고 차이에 민감하며 약자는 늘 안정성을 추구하고 강자는 늘 경쟁을 추구하죠.

따라서 약자는 평화에 기본적인 보편성의 권위를 주장하고 강자는 늘 승리에 기본 가치의 권위를 부여하려고 해요. 인간의 본성이 그러하기에 내세울 것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흔히 지정학적 태생(지연)이나 피의 태생(혈연)을 가지고 역사적으로 자신을 중요한 존재로 만들려고 하는 현상들이 생기는 것이죠.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 제가 추석 때 제사를 지낼 제수품을 사려고 마트에 갔어요. 거기서 조금 비싼 토종닭을 샀습니다. ‘토종닭이라고 쓴 라벨을 보면서 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 우리 문화의 자긍심이자 비극의 문제이기도 한 토종에 대해서 말입니다.

 

역사 속 신라 시대에는 성골·진골 구분이 있었어요. 실력보다는 피의 순수성으로 계급세습의 정당성을 기준으로 두는 게 요즘의 가치관으로는 전혀 합리적이지 않지요. 신라는 그런 제도를 당시의 내적 갈등을 풀 수 있는 기준이라고 여겼던 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생물체도 같은 피로 5번의 교배를 지속하면 종이 재생산되지 못하죠. 그래서 인간도 결혼할 때에는 성씨를 다르게 하고 사회 특성에 따라 먼 지방과의 혼인을 환영해왔습니다.

사회적 개념으로 굳어진 피의 순수성은 생물학적으로 비과학적이라는 말씀이에요. 이를 다시 확대해서 보면 우리의 피’, ‘우리 민족이라는 말도 사실 사회 통합적 관념일 뿐 과학적 추론으로는 확률적 재생산이 불가능한 말이라는 거죠.

피의 순수성에서 나오는 혈통에 대한 문화는 지역적 자긍심을 심어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지역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지역과 지역의 차이에 따라 편견적 주관을 세습하기도 하고요.

단편적인 실례이지만 인간은 이렇게 차이를 위해 비논리적, 비과학적 문화도 기꺼이 수용하고 대를 이어 재생산하는 존재인 거에요.

 

교육수준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현재 21세기에 한민족의 민족주의라든가, 한 지역의 자긍심과 그에 따른 지역갈등이라든가 하는 것이 정치권의 주요 상품들이라는 현실에서 논리성이나 합리성, 과학성보다 그것 위에 과거의 문화적 인식이 중요시된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얼마나 본질적 사고를 존중하는가 하는 의문을 품게 됩니다.

더욱이 내세울 게 전혀 없는 사람들까지도 나는 태생이 본래 대한민국이기 때문에 외국인들보다 더 우월하다는 인식이 기업 하는 사람들한테까지도 번져 있다는 것은 계급의 상하 관계를 넘은 그릇된 비논리적 문화의 보편적 권위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2. 탈북인과 북한

 

이질성은 충돌의 원인이 됩니다.

탈북인들의 사고의식과 행위들을 우리 사회에서 불편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기본적으로 그 불편한 시각은 당연하고요, 이질성으로 인한 차이의 인식도 당연하죠.

이해는 용서를 가져오고 용서는 소통을 통한 배움의 장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기 위해 이질성을 이해하려면 상대방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질성의 원인인 북한은 어떤 사회일까요? 다수가 알듯이 북한과 남한의 분단이유는 자본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의 싸움, 즉 강대국들의 상호견제를 위한 이념에서 시작되었죠.

그래서 북한은 당시 소련의 사상과 이념을 옹호하는 국가로 세워진 거죠.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근간으로 니체가 순수이성비판에서 말한 노예적 도덕관을 숭배하는 정치체제가 바로 북한의 정치 근간이죠. 거기에 인간의 권력 욕망을 더 합해서 김일성을 신으로 하는 종교적 국가로 된 것입니다.

모든 사회 통합적 가치는 믿음이죠. 종이에 잉크로 그림을 새긴 화폐가 그 어디에 가서도 어떤 물건과 교환 할 수 있다는 보편적 믿음 때문에 가치가 생긴 것처럼 사회를 움직이는 통치체제도 그 믿음이 근간이 됩니다.

흔히 지금껏 못 먹고 못 산 기본 원인은 지주, 자본가들 때문이고 모든 핍박을 받는 약자들을 위해 투쟁하는 해방자가 곧 신으로 숭배받는 구조로 사회주의가 생성된 것처럼요.

 

영국의 경제학자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병을 치료하기 위해~ 라는 명분에 비판이 배제되면 그 명분은 또 다른 무서운 병균으로 변형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세계 역사 속에서 위대한 독재자들은 모두 병을 치료하겠다는 명분으로 등장했어요. 사회 다수가 가지고 있는 병을 치료해 줄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숭배와 권위를 만들어냅니다. 다른 의견을 모두 나쁜 것으로 여기는 일방적 가치관으로 이상사회를 위한 투쟁의 수단으로 생각이 다르면 죽여도 좋다는 야만성이 양성됩니다. 그런 구조에 대한 자기합리화 과정에서 일부만이 호의호식하고 다수는 굶주림과 핍박에 시달리는 또 다른 노예 제국이 생긴 거죠.

북한도 그와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유일한 왕권이 법 위에 군림하고 모든 국민은 왕의 지시에 절대복종해야 한다는 국가 유지방식이 합리화되면서 국민에게는 왕의 지시에 따른 생각을 자신의생각으로 여기고 그에 따른 행위만 해야 할 의무만 주어지죠.

 

여기서 탈북인들의 이질성이라는 특성이 형성됩니다.

북한에서는 만 8세부터 평생 소년기,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로 구분하여 철저한 조직 생활을 합니다. 조직 생활이란 개인의 생각이 생겨나지 못하게 집단적 교육을 통한 인식의 세뇌과정이 필요목적이죠. 그러므로 북한 사람들은 하나의 도덕관으로 사회를 판단하는 인간성의 기준과 옳고 그름의 기준이 보편화하고 통일이 됩니다.

그 주관은 세뇌를 통해 형성된 것이지만, 결국은 대단히 주관적이고 내재화되어 있어요. 한마디로 옳고 그름의 판단이 정확하게 일률화해 있고 다양성을 존중할 수 있는 기초적 인식 자체가 형성되어 있지 않죠.

다양성의 존중이 성립하려면 자신과 다른 성향과 인식에 대한 이해가 기본적으로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다 보니 지나치게 주관적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탈북인들이 우리 사회에 정착하면서 많은 문제점을 만들고 대한민국 사회의 불편한 시각을 가지게 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3, 탈북인들에 대한 편견의 원인과 사회 관념의 모순

 

사람의 인생은 청소년 시기에 형성된 기억이 인생 전반에 걸쳐서 판단을 주도하죠. 완전한 주도는 아니더라도 인생 전반에 청소년 시기의 환경에 의한 경험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말입니다.

오스트리아 태생의 영국 철학자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논리철학논고세계는 나의 표상이다라는 문장이 있어요. 세상은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뇌 속에 인식으로 존재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기억에 의존해서 현실을 판단하는 과정에서 많은 오류를 범하며 살죠.

북한에서 태어나 청년기를 걸쳐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북한의 역사를 경험하고 그 안에서 대부분 인간의 욕망이 어떤 사회를 만드는가를 몸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해방 후 대다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과거의 아픔은 가진 자들 때문이라는 피해의식과 혐오의식을 심어주어 사회주의라 사상의 동경자가 되게 합니다. 모든 땅을 권력의 공권력으로 몰수해서 무상으로 골고루 나누어 주는 토지개혁을 하는 과정에서 공짜로 토지를 받은 사람들은 무조건 김일성을 옹호하고 김일성을 신으로 여기게 되죠. 그다음은 집단경영체제라는 명분으로 국영화하는 사업을 한다고 하면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줬던 토지를 다시 빼앗아 집단경영농장을 만들고 국유화하면서 국가 전체를 김일성의 개인 재산으로 만들어 버렸죠.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반대세력들은 그 싹부터 모조리 잘라내고 유일적 신의 왕권을 가지게 됩니다. 김일성 우상화 교육을 평생 받아야 하며 대학의 입시과정에서도 아주 중요한 학과목이 되는 정도로 김일성종교의 교리가 국가의 유지를 위한 근간이 됩니다.

종교의 기본 생명력은 믿음이죠. 그 믿음을 유지시키기 위해 외국의 모든 통신을 차단하고 오직 김일성 종교단의 설교만 들어야 하며 그로 인해 모든 의식에 일방적인 관념들이 만들어집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은 문제가 있죠.

요즘 사회적 논란거리가 되는 586세대는 학생들이 권력에 맞서 싸워 승리했다는 공통적인 성취감으로 그 어떤 세대보다 공유하는 유대감이 깊고 대단히 일방적 시각의 확신을 가지고 있는 듯해요.

자신들의 적이었던 옛 권력을 혐오하고 증오하기 위한 명분으로서 가난한 자들의 해방과 같은 북한의 이념을 적극적으로 응용했고, 오늘 현재에도 옛 권력에 대한 혐오와 비판을 지속해 가고 있어요. 자신들이 사회기득권의 중심에 있는데도 지키려는 자의 입장을 은폐하고 가지려는 자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하면서 말과 행동의 모순이 커져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죠. 그 모순 속에는 북한에 대한 입장도 있어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쓴 독일의 작가이자 철학자인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힘이 없는 양심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물리적 힘이 없으면 아무리 양심에 호소해도 쓸모가 없다는 인간의 이중성을 이야기한 거예요.

근대 국가의 종류를 보면 권력을 위한 국민의 희생이 당연시되는 독재국가들이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을 위한,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국가시민계약이 지켜지는 국가가 있죠.

북한은 세계적으로도 권력의 생명을 위해 모든 국민을 희생시키는 것을 당연시하는 독재국가인데도 불구하고 평화와 통일이라는 명분 아래 우리나라 국민에게 북한에 대한 좋은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현 정권이나 파쟁의 노력들이 있어요.

학자들은 보편적 상식에서 벗어난 판단을 하는 개인에 대해서는 천재일 가능성을 제시하지만, 한 국가가 상식에 벗어난 행위를 하는 때에는 다른 위험성을 유발하는 아주 큰 문제라고 보고 협력을 기피합니다.

여기서 인간의 기억과 판단의 오류를 볼 수가 있어요. 자신들의 청년기 업적에 대한 정당성으로만 현재의 이기성을 채우려고 하면서 변화하고 발전하는 그 이후의 문제들을 외면하고 부정하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자기합리화하는 것은 보편적 지성의 판단에서 당연히 비판의 대상이 되죠.

 

북한과 남한의 서로 다른 환경과 정치 구조 속에서 파생된 각자의 세계관이나 이념의 이질성은 충돌의 원인이 되며 특히 남한에 정착하려고 하는 소수의 탈북민은 사회 보편적으로 불편한 시선에서 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입니다.

 

 

4. 문제의 해석에 대한 프레임 바꾸기

 

모든 문제의 해석에서 중요한 것은 무조건 해야 한다의 전제가 아니라 , 무엇 때문에 해야 하는가를 전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과거의 기억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현재를 살고 미래를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판단의 중요한 역할은 생각의 구조를 만드는 문화권의 프레임인 것입니다.

언어는 생각을 만드는 프레임이고 그 언어는 교육을 통해 만들어지죠.

유독 대한민국의 사회적 언어에는 현실적인 용어가 많지 않아요. 단일민족이라는 피의 순수성 이론과 조선 시대의 공통적 역사를 가졌다든가, 한 가족이 분단으로 인해 서로 갈라져 대립하고 있는 비극이라든가 등 모든 통일의 필요성이 역사화해 과거의 문제로 엉켜있고 현재나 미래를 위한 합리적 접근이 별로 없어요.

 

종교 국가와의 협력과 소통은 종교 교리의 믿음을 해치는 원인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북한은 소통과 협력이라는 말로 번번이, 소위 을 뜯고는 곧 대결의 원점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하고 있어요. 통일이라는 문제는 대단히 복잡한 문제인데 단순하게 접근시켜야 하는 장난감이 아니죠.

차이에 민감한 인간의 속성과 탈북인들의 이질성이 사회적 문제로 보편화하는 시각도 우리의 지성은 해결할 수 있는 준비가 부족합니다. 김일성 부자의 권력욕에 의해 생각이 굳어진 노예로 전락하고 재생산된 북한의 의식에 대해 이해와 합리적 접근방식을 논하기 전에 너무 비판적 시각에서만 평가하고 분리하여 등수를 매기고 차별하는 사회 지성에 대해 부끄러움이 전혀 없으니 말이죠.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점의 출발은 교육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 대학 구조조정 과정에서 인문학이 제일 먼저 축소되거나 없어졌어요. 고등교육과정에 인문학이 사멸했다는 것은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을 없애고 무엇을 위해 왜 해야 하는가의 생각이 사라진 무조건 먹이를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로봇으로 만든다는 걸 의미하죠.

역사교육과 한반도 사회 통합적 가치의 전반에 걸친 사유가 없는 피해의식과 분리주의 같은 감정선 안에서 현재의 권위에 기준을 두고 그와 반대되는 과거는 당시의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채 반동이라는 딱지로 자신들의 당파적 색깔을 옹호하는 데 급급해서 사회 정신적 혼란을 초래하죠.

 

2021815일 광복회 회장의 연설을 봐도 얼마나 정신이 나간 지성의 타락 속에 우리가 살고 있는가에 대해 증명할 수 있어요.

대한민국은 태초부터 잘못 지어진 집처럼 민족정신을 강조하면서 북한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했죠. 모든 국민은 각자의 삶을 위해 존재하지 민족정신 같은 것으로 권력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죠. 김 씨의 왕좌보존 때문에 핵을 만들고 그로 인해 세계의 규탄을 받고 경제적으로 폐허가 된 국가에서 국민은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는데 친일잔재청산을 했다고 칭찬하면서 제대로 만들어진 국가로 취급합니다.

대한민국은 애초에 친일잔재를 청산하지 않아서 잘못된 국가라고 하는데, 굶주려서 죽는 국민은 없고 세계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국가이죠. 말하자면 힘이 있는 국가라는 것이에요.

국가의 기념일에서조차 논리가 없는 파쟁의 감정이 공공연하게 표출되는 것에 대해 사실 우리 사회 지성의 낙후성에 대해 돌아보게 되는 것입니다.

 

간단한 실례를 들었는데, 다양성의 존중을 수용할 준비가 과연 충분히 되어있는가가 오늘 토론의 핵심입니다.

인간의 관념과 행위는 각자가 다른 것처럼 소속된 그룹의 특성도 반영이 되고 탈북민들도 그와 다르지 않죠. 남한의 시선에서 자신의 주관과 다르다는 이유로 불편을 느끼며 사회 적응을 위해서는 네가 나의 기준에 맞추어야 한다는 일방적 요구가 상대방으로 하여금 고립을 자처하게 하는 현상들은 아직도 우리 사회의 생각하는 방식에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고 봅니다.

자신의 성찰이 없고 사회에서 강요된 타자의 개념을 자기화하여 그것을 또 다른 타자에게 강요하는 일방성은 우리 사회 지성을 기의가 사라지고 기표만 떠다니게 하는 공허로 이끌어 간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어요.

 

탈북민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 대해 현재의 프레임을 버리고 다른 프레임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일방적으로 자유민주주의 체제 문화권의 방식으로 변화를 모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모순만 양산해갈 따름입니다.

다양성의 존중이라는 개념을 기초로 한다면 타자에게 변화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수용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상에 완벽한 것은 아무것도 없죠. 자신의 척도 또한 완벽하지 않으며 다른 것을 수용할 지성의 준비를 해야 통일에 대한 방법론도 합리적이고 실제적인 방식을 도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주제의 핵심은 북한의 특성을 모르고 무조건 자신의 척도로 상대방의 변화를 강요하는 차이와 편견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통일도 기의가 사라진 기표로만 공허하게 떠다니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유성을 배제한 교육의 문제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 지성의 준비성을 높임으로써 지혜로운 해법을 찾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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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휘 / 대표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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