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책] 『쓸데없이 눈부신 게 세상에는 있어요』 -안도현

문화·예술 / 안재휘 기자 / 2025-11-23 07:17:57
2020년 고향으로 귀향한 후 마주한 삶의 풍경과 사색이 고스란히 담겨
“아파트 허공 둥지에서 땅에 착지…새소리, 풀 뽑는 일상의 소소한 것들이 시가 되어 다가와”
“시인은 말을 앞질러 가면 실패한다”
“무의미와 유의미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 시인의 역할”

 

 경북 예천 출신의 안도현(64) 시인이 5년 만에 열두 번째 시집 쓸데없이 눈부신 게 세상에는 있어요’(문학동네)를 출간했다. 1981년 등단해 시력 45년을 바라보는 그는 동시, 동화, 산문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며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번 시집은 2020년 고향 예천으로 귀향한 후 쓴 작품들을 묶은 것으로, 타향살이를 마치고 고향 땅에서 마주한 삶의 풍경과 사색이 고스란히 담겼다.

 

안 시인은 20204월 전주 생활을 접고 고향 예천으로 돌아왔다. 마당, 텃밭, 연못이 있는 집에서의 일상은 이전과 다른 시적 영감을 선사했다. 그는 아파트 허공의 둥지에서 살다가 땅에 착지한 느낌이라며 새소리, 풀 뽑는 일상의 소소한 것들이 시가 되어 다가왔다고 말한다. 시집에는 닭 키우기, 풀 뽑기, 장에서 열무씨 사기 등 소박한 농촌 생활이 녹아있다.

 

예를 들어 풀 뽑는 사람에서는 책에 밑줄 긋는 일보다 풀 뽑는 일이 천배 만배 성스럽다며 자연 속 노동의 가치를 되새긴다. ‘꽃밭을 한 뼘쯤 돋우는 일을에서는 친구가 시인은 원래 이렇게 쓸데없는 일 하는 사람이냐고 묻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는 시인이 추구하는 쓸모없음의 미학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시집 제목부터가 그렇다. ‘쓸데없다는 부정적 의미를 눈부시다는 긍정적 표현과 병치시켜, 하찮아 보이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강조한다. 안 시인은 유용성과 경제적 가치만을 좇는 사회에서, 정작 소중한 것은 눈에 띄지 않는 것들이라 말한다. 그는 무의미한 것 속에도 의미는 존재한다며 시를 통해 일상 속 사소한 순간들을 재발견하려 했다.

 

특히 팬데믹 기간 요양병원에 입원한 어머니를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며 쓴 유리 상자는 이별의 아픔과 동시에 죽음이 세상을 털어내는 시원함일 수 있다는 역설적 통찰을 담았다. 어머니의 부재 이후 글과 행동이 더 자유로워졌다는 시인의 말에서, 상실 뒤에 찾아온 창작의 여유가 엿보인다.

 

안 시인은 이번 시집 작업에 대해 의도나 결론을 밀어두고 언어 자체를 따라가려 했다고 설명했다. 과거 사회적 메시지에 무게를 뒀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말의 빛깔과 물기를 자유롭게 마주하는 데 집중했다는 것. 그는 시인은 말을 앞질러 가면 실패한다언어가 이끄는 대로 흘러가게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안 시인은 후배들에게 남의 시를 분석하지 말고 언어 자체의 차이를 느껴보라고 조언한다. 그는 시인을 의식하거나 메시지를 찾지 말고, 시어가 가진 독특한 색채를 즐기라고 강조한다. 또한 시적 대상이 사라질수록 더 선명해진다며 고향의 옛 역 고평역이나 어린 시절 기억을 소재로 삼은 시편들을 소개했다.

 

문학관에 대해선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학은 무용하기에 오히려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는 김현 문학평론가의 말을 인용하며, 무의미와 유의미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 시인의 역할이라 설명했다.

 

올해 초 단국대 교수직을 퇴임한 안 시인은 텃밭 가꾸기와 글쓰기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는 내년에 동시집을 출간할 예정이라며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글을 쓰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1996년 베스트셀러 연어로 대중적 인기를 얻은 그는 한 작가가 한 장르만 고집해야 한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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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휘 / 대표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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