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독립성’ 무기로 재판 속도 마음대로 주무르는 장난질
증인 많으면 매일 공판 열어 빨리 결론 내는 게 판관의 의무 아닌가
우리법연구회 소속, 편향된 재판 결과만으로도 의심 사기에 충분
사법 정의 무너지는 대한민국의 미래, ‘암담’ 넘어 ‘참담’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 재판을 16개월을 끌다가 선고도 안 한 상태에서 사표를 낸 재판장 서울중앙지법 형사34부 강규태 부장판사의 행태를 놓고 말이 많다. 선거법 위반 사건은 신속한 재판을 위해 1심을 6개월 내에 끝내도록 법에 규정돼 있다. 잘라 말하면, 강규태는 이미 10개월 동안 위법을 저질렀다. 이 사건은 전혀 복잡하지 않은 사건이라는 게 법조계 안팎의 일반적인 평가다.
그런데 강 부장판사는 정식 재판에 앞서 사건 쟁점을 정리하는 공판 준비 절차를 무려 6개월이나 진행했다. 처음부터 ‘2주에 1회’씩 재판 기일을 잡았다. 작년 8월 이후엔 이 대표의 단식 등을 이유로 재판을 두 달 넘게 미뤄주기도 했다. 작년 10월엔 “주 1회 재판을 고려해 달라”는 검찰 요청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런 행태를 놓고 강 부장판사가 일부러 재판을 질질 끈 증거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주요 재판을 새로 하게 만든 만행에 대한 일말의 소회도 없어
그러나 강규태가 일단 1심을 6개월 내에 끝내도록 규정돼 있는 법을 위반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판사들이 재판하는 척 시늉만 하고 선고를 후임 재판부에 떠넘기는 ‘폭탄 돌리기’가 곳곳에서 벌어질 기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미 법조계에서 판사들은 ‘재판의 독립성’이라는 방탄복을 무기로 재판이 속도를 마음대로 늘리고 줄이는 장난질로 재미를 보는 ‘법꾸라지’ 행태로 권력을 농단해왔을 개연성이 높다.
이런 비판적인 정서에 아랑곳하지 않고 강규태는 그의 행태에 타오르는 민심에 기름을 끼얹었다. 최근 자신의 대학 동기들의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 관련한 메시지를 올렸다. 그런데 그와 동기라는 최진녕 변호사가 공개한 그 내용이 정말 가관이다. 메시지에서 강 부장판사는 명예퇴직한다면서 “변호사로 사무실을 차려 새로운 삶을 살아보려고 한다”고 밝혔다. 온 나라의 관심사인 주요 재판을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게 만든 만행에 대한 일말의 소회도 없었다.
간단한 사건의 재판장이 선고 앞두고 사표 내며 줄행랑친 셈
강규태는 “출생지(1971년 전남 해남군 출생)라는 하나의 단서로 사건 진행을 억지로 느리게 한다고 비난을 하니 참 답답하다”고 말했다. 이어서 “내가 조선시대 사또도 아니고, 증인이 50명 이상인 사건을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 불만을 표시했다. 6개월 안에 끝내야 할 재판에 증인이 50명이나 되면 매일이라도 공판을 열어서 빨리 결론을 내는 게 판관의 의무가 아닌가. 이 대목만 보아도 강규태는 상식조차 없는 인물이라는 합리적인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시거든 떫지나 말라’는 옛말이 있다. 우리는 이재명 대표 구속영장 심사를 맡은 유창훈 판사가 영장을 기각하면서 밝힌 논리도 없는 판결문을 보며 아연실색한 적이 있다. 이번엔 상식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판단할 수 있는 간단한 허위 사실 공표 사건 재판장이 선고를 앞두고 사표를 내고 줄행랑을 친 셈이다. 아무리 보아도 철저히 계산된 무책임한 행동으로 보인다. 갖은 수단을 동원해 재판을 지연하려는 작금의 이재명 행태와 어떻게 이렇게 딱 맞아떨어지나.
금권에 줄 서서 썩은 정신으로 저지르는 판관 비위 원천 차단돼야
굳이 그가 전남 해남군 출신이라는 것을 먼저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그가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에서 요직들을 꿰찬 우리법연구회 소속이고, 여러 재판에서 편향적이었다는 것만으로도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그 마지막 줄행랑으로 화룡점정을 찍었다고 보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이런 식으로 사법 정의가 무너져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암담’을 넘어 ‘참담’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지연된 정의는 반드시 척결해야 할 불의(不義)다.
판사가 재판을 지연시키거나 앞당겨 부패의 고리를 만들 여지는 철두철미하게 차단돼야 한다. ‘사법권 독립’이라는 방탄복을 입고 금권에 줄 서서 썩은 정신으로 판관 노릇을 하는 비위는 원천 차단돼야 한다. 이재명 관련 사건을 담당하는 판사들이 줄사표를 내는 방법으로 피고가 원하는 ‘시간 끌기’를 돕는 행태는 최악의 ‘법꾸라지’ 편법 행태다. 말이 안 되는 모순의 법정, 무너져가는 법정의 정의를 바라보며 가슴을 친다.
안재휘(安在輝)
-언론인/칼럼니스트
-제34대 한국기자협회 회장
-(現)인터넷신문 미디어 시시비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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