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변곡점을 만들어낼 ‘정치대개조(政治大改造)’ 큰 그림 필요
‘탄핵 남발’로 행정부 마비시키는 시대 뒤떨어진 헌법부터 개정돼야
언어도단의 정치 그냥 두고서 발버둥 쳐 보았자 말짱 공염불
‘인과법칙’ 또는 ‘인과관계’라고도 하는 인과율(因果律)은 두 개의 서로 다른 사상(事象)이 인과적 필연성에 의해서 연관된다는 법칙이다. 과학을 신봉하는 문명국가에서는 모든 사회현상의 발생 인과관계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분석하여 결과에 대한 책임 추궁 못지않게 그 원인을 해소하는 방안들을 모색한다. 증세만 중시하는 ‘대증 처방’이 아니라 소위 말하는 ‘원인 처방’을 통한 국가사회의 진화를 꾀함으로써 문명국가로 발전해 나간다.
윤석열 대통령의 6시간짜리 ‘비상계엄’ 소동은 외견상 누가 보아도 ‘이해할 수 없는 실책’을 뜻하는 야구 경기의 ‘본헤드 플레이(Bonehead play)’였다. ‘탄핵’ 논란을 모면할 방도 또한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라의 미래를 진정 위한다면, 온 국민이 ‘탄핵’ 광풍에만 온전히 갇혀서는 안 된다. 귀 얇은 국민을 선동하여 길거리로 뛰쳐나오게 하고, 그 거센 바람을 악용하여 정치적 이득만을 취하려는 ‘정치꾼’들의 준동에 휘둘리는 건 최악이다.
국민을 선동하여 뛰쳐나오게 하려는 ‘정치꾼’들 준동에 휘둘리는 건 최악
윤 대통령의 엉성하고 어이없는 비상계엄 해프닝을 무조건 두둔하거나 호된 비판을 나무랄 이유는 없다. 그러나 더 슬기로운 것은 소동의 그 너머, 윤 대통령이 결단에 이르게 된 동기까지도 헤아려야 한다. 그래서 어이없는 행위에 대한 책임 추궁 못지않게 병소(病巢)들을 찾아내어 적확(的確)한 처방을 통해 우리 정치의 큰 변곡점을 만들어내는 게 성숙한 자세다. 말하자면 ‘정치대개조(政治大改造)’의 큰 그림이 절실하다는 얘기다.
대통령의 대국민 특별담화에 담긴 ‘문제’ 인식에는 공감할 측면이 적지 않다. 윤 대통령은 담화에서 우리 정치권을 향해 ‘국민의 삶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탄핵과 특검, 야당 대표의 방탄으로 국정이 마비 상태에 있다’거나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됐고, 입법 독재를 통해 국가의 사법 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무리 다시 읽어도 결코 과장된 게 아니다. 국회에서 일어나는 행태를 보면 이 나라는 망국으로 가고 있음이 역력하다.
대통령 대국민 특별담화에 담긴 ‘문제’ 인식에는 공감할 측면 적지 않아
걸핏하면 대통령 탄핵 논란이 일어나는 천박한 정쟁의 나라로 추락하고 있지만, 소동의 이면에 드러난 교훈들을 되새겨서 과감히 혁신해내는 것은 대단히 소중하다. 국회 절대 다수당이 되었다는 이유 하나로 더불어민주당이 말도 안 되는 입법 독재에 취해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 아닌가. 윤석열 정부를 아무것도 못 하게 하여 사실상 식물정부로 만든 거대 야당의 완장질 횡포는 매일 같이 ‘사상 초유’의 초갑질 추태를 만들고 있지 않나.
정권을 골탕 먹이기 위해서 장관 등 정부 요직 인사들을 연거푸 탄핵해 일을 못 하게 하고, 이재명 대표를 수사했다는 이유로 검사들을 줄줄이 탄핵하는 일만 가지고도 한계를 훌쩍 넘은 권력남용이다. 내년도 예산안에서 껄끄러운 존재라고 생각하는 부처의 활동비 예산은 마구잡이로 깎아대고 잘 보여야 할 법원 예산은 오히려 올려주는 행태는 뭔가. 자기들이 쓰는 국회의 활동비 역시 지키는 낯간지러운 작당은 도대체 어쩌자는 얄팍한 장난질인가.
정부 인사들과 이재명 수사 검사들 줄줄이 탄핵…한계 넘은 권력남용
입법부 국회의원들이 선출직이면 행정부 수장 대통령도 선출직이다. 똑같이 선거로 선출된 국민의 대표라는 점은 다르지 않다. 그런데 입법부가 헌법과 국회법 등 현행법이 갖고 있는 미비·모순점들을 악랄하게 악용하여 오로지 행정부 골탕 먹이는 정치만 획책하는 고약한 짓은 정말 괜찮은가. 사법처리 대상인 정치인이 오만 법꾸라지 행태를 지속하면서 이 나라 법치의 주무장관들을 국회로 불러내어 호통을 치는 게 어떻게 정의로운가.
전당대회 돈 봉투 수수 의혹을 받는 수사대상자가 검찰의 소환은 한없이 묵살하면서 배지를 달고 앉아 장관에게 핏대를 올리는 게 예삿일이 됐다. 아무리 보아도 이건 정상이 아니다. 민주당에는 과거 정권의 권력 비리나 전당대회 돈봉투 수수 문제로 사법 위기에 처한 국회의원들이 적지 않다. 그들이 사적 혐의로 다수의 재판을 받고 있는 전무후무의 정당 수장 이재명 대표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방탄 정치를 펼치고 있는 현실은 기가 막힌다.
사적 혐의 재판받는 이재명 중심 방탄 정치 펼치는 현실 기가 막혀
그들이 휘두르는 무소불위 다수독재 위험성 또한 이 나라에 드리운 치명적인 암운(暗雲)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앞뒤 안 맞는 비상계엄이 말이 안 되듯이 더불어민주당이 마구잡이로 휘두르고 있는 입법 독주 행패 또한 하루빨리 박멸해야 할, 이 나라 정치의 고질적 병폐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허여하고 있는 헌법을 비롯한 각종 법률의 허점을 악용할 수 없도록 뜯어고치는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가 됐다.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말한 “개헌을 통한 돌파구 마련이 필요하다”는 말에 힌트가 있다.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을 조정하는 것도 그렇지만, 국회 다수당이 마음만 먹으면 ‘탄핵 남발’로 행정부를 마비시킬 수 있도록 부실한 요소가 많은, 시대에 뒤떨어진 헌법부터 개정돼야 한다. 온갖 비리·부정 의혹을 받는 국회의원이 면책·불체포 등 특권 뒤에 숨어서 치졸한 방탄 정치를 일삼을 수 있도록 구멍이 많은 다른 법·규정들도 한시바삐 재정비돼야 한다.
‘탄핵 남발’로 행정부 마비시킬 수 있는 낡은 헌법부터 개정돼야
윤석열 대통령은 상식 밖의 ‘비상계엄’ 소동에 대해 엄중한 정치적·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나라의 기능을 온통 마비시키는 어불성설의 국회 다수당 의회 독재 여지도 함께 뜯어고쳐야 한다. 현행 헌법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충분히 알게 하는 희한한 일들이 거듭 일어났다. 물론 법의 허점을 찾아서 안하무인으로 마구 파고들어 악용하는 행태가 더 나쁘긴 하다. 그렇거나 말거나 악용 사례가 드러난 이상 잘못된 법, 허술한 규칙은 고쳐야 한다.
개헌을 비롯한 광범위한 ‘정치대개조’ 운동이 벌어져야 한다. ‘다수결의 원칙’은 민주주의의 평화를 위해서 선택한 한 방편에 불과하다. 다수가 반드시 정의로운 것도 아니다. 다수결로만 하면 뭐든지 다 해도 된다는 정치인들의 유치한 사고방식은 혁파돼야 한다. ‘윤석열 탄핵’만 외치는 것만을 해법으로 몰고 가는 것은 위험하다. 이 나라의 엉터리 정치를 완전히 바꿔낼 새로운 설계도와 새로운 동력을 만들어내지 않은 채, 언어도단의 정치를 이대로 그냥 두고서 뭐를 어찌한다고 발버둥 쳐 보았자 말짱 공염불이다.
안재휘(安在輝)
-언론인/칼럼니스트/소설가
-제34대 한국기자협회 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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