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의 위험성을 이해하고 자신의 경험을 돌아봄으로써 앞으로 잘못을 조장할 가능성을 현저히 줄일 수 있다”
-사회에 해악을 미치는 사람들은 언제나 공범이 돼 주는 평범한 사람들이 필요하며, 평범한 사람들이 공모를 통해 악행을 조장하거나 방조한다면 같은 사람들이 행동을 달리함으로써 악행을 저지할 수도 있다는 의미
기업에는 도움이 되지만 사회에는 해로울 수 있는 경영 전략을 제시한 컨설팅 회사나, 터무니없이 비현실적인 목표치를 제시해 직원들의 불법행위를 조장한 경영진을 어떻게 봐야 할까? 성범죄나 조직 내 비리를 고발하는 내부의 목소리를 묵인한 사람들은?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이자 행동경제학자 맥스 베이저먼의 신간 ‘우리는 어떻게 공범이 되는가’(민음사)는 조직과 사회를 병들게 하는 ‘공모(共謀)’의 구조적 문제를 파헤친다. 에티스피어가 선정한 윤리 분야 영향력자답게, 그는 침묵과 방조가 어떻게 집단적 악으로 이어지는지 날카롭게 분석한다.
베이저먼은 다년간의 연구 및 컨설팅 경험과 함께 자신이 부정행위에 연루된 사례까지 낱낱이 밝히며 평범한 우리 누구나 공모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명백한 공모’와 ‘일상적 공모’의 일곱 유형을 통해 비즈니스, 조직, 정치, 사회에서 나타나는 공범죄에 정면으로 맞서는 방법들과 잘못된 행동을 무시하거나 묵인하거나 지지하게 될 수 있는 심리적 함정들을 살피고 피할 전략을 제시한다.
△공모의 덫을 방치하면 기업도 조직도 사회도 퇴보한다
‘우리는 어떻게 공범이 되는가’는 사회적 스캔들의 배후에 숨은 공모자들의 역할을 조명한다. 미국에 오피오이드 위기를 초래한 제약사 퍼듀 파마와 그 소유주 새클러 가문에게는 중독을 조장하는 판매 전략을 수립하고 조언한 컨설팅 회사 매킨지, 퍼듀가 만든 마약성 진통제 옥시콘틴을 과다 처방한 의사들과 이를 공급한 약국과 병원, 의심스러울 정도로 급등한 발주량을 신고하지 않은 의약품 유통업체들이 있었다.
벤처 캐피털 회사들은 위워크(WeWork)의 비즈니스 모델과 재무 상태에 문제가 있음을 알고도 투자자들에게 알리지 않았고, 약국 체인 월그린은 테라노스의 기술에 제기된 의혹과 반대를 무시하고 혈액검사 키트를 입점시켰다.
미투 운동을 촉발한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회사와 할리우드 영화계에는 와인스틴의 성범죄에 협조하거나 침묵하는 문화가 형성돼 있었다.
미국 체조 국가대표팀 주치의 래리 나사르의 성폭력에 눈감은 체조협회와 올림픽위원회처럼, 가해자에 맞서야 할 리더들이 사실을 외면한 사례를 들며 공모자의 행위에 주목하는 것은 명백한 범죄자들의 책임이 덜하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사회에 해악을 미치는 사람들은 언제나 공범이 돼 주는 평범한 사람들이 필요하며, 평범한 사람들이 공모를 통해 악행을 조장하거나 방조한다면 같은 사람들이 행동을 달리함으로써 악행을 저지할 수도 있다는 의미라고 말한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누구나 빠질 수 있는 공모의 함정
사람들은 왜 타인의 부정행위에 동참할까? 예를 들어, 동료가 리베이트를 받는다는 의혹이 있어도 “증거가 없고 회사에 도움된다”는 이유로 묵인할 수 있다. 공모는 악의적 동조뿐 아니라 분위기 순응, 권위 복종, 관행 묵인, 구조적 특권 인식 부족 등 다양한 심리로 발생한다.
행동윤리학을 비롯해 여러 분야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복잡한 사건을 단순화해 주범에만 집중하고 공모자를 간과하며, 간접적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 또한 특정 목표에 매몰되면 윤리적 판단이 흐려지고, 불확실할 땐 행동보다 방조를 선택하며, 부도덕이 점진적으로 확대되면 용인하기 쉽다. 이처럼 누구나 무의식중에 공모에 휘말릴 수 있다.
△공모의 위험에 정면으로 맞서는 법
공모자가 되지 않으려면 공모의 함정에 쉽게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은 물론 이를 예방하기 위해 사전에 명확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인간은 미래의 행동을 계획할 때는 도덕적인 선택을 더 많이 하지만, 실제로 행동을 해야 하는 순간에는 자신에게 이로운 선택을 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저자는 조직 내 비윤리에 대응하기 위한 실천적 조언을 제시한다.
· 공개적 비판에 대한 위험 부담을 줄인다
조직 내 영향력을 키워 처벌 위험을 줄이고, 결정적 순간에 목소리를 낸다. 동료와 연대해 비윤리 개선에 힘쓴다.
·도덕적 가치 사전 숙고
핵심 가치를 미리 정립하면 비윤리적 선택을 거부하기 쉬워진다.
·맹점 인지
단일 원인 오류, 부작위 편향, 간접적 해악 심리 등을 경계해 타인의 행동을 신중히 평가한다.
·관계 확장
소속 집단에만 매몰되지 않고 외부와 연결될 때 공동선에 가까운 결정을 내리기 쉽다.
·집단행동 촉진
트럼프 정부 시기 법무부 간부들이 집단 저항으로 장관 해임 시도를 막았고, 인구조사국 연구원들도 데이터 오용을 거부했다. 밋 롬니와 시몬 바일스 역시 권력형 범죄와 시스템적 문제에 맞섰다.
또한 윤리적 조직 설계를 위한 리더십의 역할과 제도적 개선 방향을 강조한다. 그 밖에 윤리적인 조직을 설계하고 제도를 수립하며 공정성을 개선하기 위해 리더가 할 수 있는 일과, 테라노스의 사기를 폭로한 타일러 슐츠와 에리카 청, 공화당 소속임에도 트럼프의 민주주의 파괴를 비판하고 탄핵 심판에 찬성표를 던진 상원의원 밋 롬니, 래리 나사르의 성범죄를 가능하게 한 시스템에 목소리를 높인 정상급 체조 선수 시몬 바일스 등 악행에 맞서 싸운 “용기 있는 사람들”의 사례를 전한다.
저자는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공모자가 되는 일을 전적으로 피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기대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공모의 위험성을 이해하고 자신의 경험을 돌아봄으로써 앞으로 잘못을 조장할 가능성을 현저히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악인의 행동을 바꿀 수는 없더라도, 평범한 이들이 알게 모르게 연루되는 공모를 경계하고 거리를 둔다면 사회에 막대한 해악을 미치는 사람들에게 제동을 걸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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