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의 시시비비] ‘기자’라서 죄송합니다

안재휘의 시시비비 / 안재휘 기자 / 2023-09-08 20:16:56
언론, 추잡한 청백전 ‘정치 복마전’ 속으로 엉켜 들고 말아
김만배 녹취록 전문(全文) 그 어디에도 ‘윤석열 커피’는 없어
교묘한 ‘펜’질 악용 일확천금·벼락출세 꾀하는 기레기들 수두룩
한탕주의에 빠져 천박한 ‘정쟁 장난질’ 도구로 추락 ‘안 돼’

 

 

 

평생을 기자로 살아온 필자가 요즘만큼 기자명함이 부끄러운 적이 없다. 불순한 가짜뉴스 소동으로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는 주인공들이 모두 기자들이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이었다. 굳이 요약하자면, 조선 왕국을 말아먹은 것도 대문 닫아걸고 우물 안 개구리들로 살면서 무서운 줄 모르고 마구 휘둘러댄 사색당파 붕당정치 때문이다. 반거들충이 장이 사대부들의 일으킨 피바람의 여파가 유구한 역사를 지닌 나라를 거덜 낸 것이었다.

 

기자 출신 인사들이 정치권으로 가서 못된 짓을 한 경우가 이전에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근년에 언론인들을 가장 참담하게 만든 것은 김의겸일 것이다. 그는 한겨레신문에서 끗발 날리던 기자였다. 물론 한겨레신문이 워낙 진보세력에 들붙은 언론이기에 그가 날린 명성의 시발점은 당연히 진보 정치권이었다. 그런 그가 문재인 정권 청와대 대변인으로 일하는 동안에 세상을 시끄럽게 한 잡음들만 해도 요란스럽기 짝이 없다.

 

김의겸이 청와대 대변인으로서 부동산 투기꾼소동을 일으킬 때는, 워낙 가난에 찌든 삶이 대다수인 기자들의 처지를 잘 아는 까닭에 짠한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우여곡절 끝에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나서부터다. 그에 대한 의구심은 국회의원으로서의 자질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 그가 일으키는 논란은 그가 어떻게 기자를 했는지, 한겨레신문은 도대체 기자를 어떻게 가르치는지조차도 의문에 빠지게 만들었다.

 

평생 기자로 살면서 요즘만큼 기자명함이 부끄러운 적 없어

 

자유언론국민연합이 올 상반기 가짜뉴스 1위로 꼽은 청담동 술자리 의혹 제기는 김의겸이 저지른 치명적인 똥볼이다. 그는 지난해 719일 국감장에서 윤석열, 한동훈, 김앤장 변호사 20명이 압구정 갤러리아 뒤편 술집에서 술을 마셨다는 의혹을 호기롭게 폭로했다. 그러나 상식에도 맞지 않은 이 주장은 아무런 검증 절차도 거치지 않은 가짜뉴스라는 사실이 금세 밝혀졌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실수를 끝까지 인정하지 않고 있다.

 

두 번째는 2022118일 마리아 카스티요 페르난데스 주한유럽연합대표부 대사와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의 비공개 면담 자리에 대변인으로 배석한 김의겸이 ‘EU 대사 측이 현 정부를 비판하고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추켜세우는 듯한 발언을 한 것으로 언론에 브리핑했다. 그러나 주한 EU 대사가 이에 대해 왜곡돼 유감이라고 직접 항의를 표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결국 김의겸은 입장문을 내고 해당 발언이 허위였음을 실토하며 사과했다.

 

그 외에도 어설픈 준비로 국회 상임위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공격하다가 되잡힌 일 등 그가 의정활동 중 똥볼을 찬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쯤 되니 유명 언론사 중참 기자까지 역임한 김의겸의 이력이 의심스럽다 못해, “한겨레신문이 고작 이따위로 마구 신문을 찍어내는 저질 언론이었던가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뭐가 되었든 간에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다면 한겨레는 김의겸을 창피스러워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다면 한겨레는 김의겸을 창피스러워해야

 

기자 김만배, 기자 신학림이 등장하는 지난해 대선 직전 허위 인터뷰 의혹은 숨을 쉬기가 어려울 정도로 참괴스러운 대형 사고다. 이 사건은 언론인 이력을 최대한 활용해서 돈 놓고 돈 먹는로또 비법을 터득해 대장동 한탕에 성공한 김만배가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2021년 기획한 음흉한 선거 공작의 일환이다. 자기들이 마음만 먹으면, 매체를 동원해 비틀기만 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사이비 기자들의 엉큼한 의식 세계가 적나라하게 반영된 중대한 시대적 범죄다.

 

뉴스타파가 내놓은 김만배-신학림 녹취록 전문(全文) 그 어디에도 윤석열 커피는 없었다. JTBC 봉지욱 기자가 2011년 대검 중수부 수사를 받았던 대장동 대출 브로커 조우형 씨를 2시간이나 취재하면서 들은 윤석열을 만나 적 없다는 진술을 쏙 빼놓고 악의적 보도를 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정말 심각한 것은 JTBC, MBC, KBS를 필두로 그 어떤 언론도 정상적인 게이트 키핑(Gate Keeping)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대선 3일 전으로 보도 시점이 맞춰진 것, 수상한 책값 16500만 원, 편집보도국의 정상적인 데스크 기능이 전혀 작동하지 않은 것만 가지고도 한국 언론역사 최대의 수치로 기록될 만하다. 정말 큰일은 어느 결엔가 우리 언론이 천박한 흑백논리와 추잡한 청백전 양상으로 치달아온 한국 정치의 복마전 속으로 엉켜 들고 말았다는 대목이다. 이런 처참한 상황에서도 당사자들은 물론 그 누구도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다는 현실은 더 아프다.

 

어느 언론도 정상적인 Gate Keeping이 작동치 않았다는 사실 심각

 

수오지심(羞惡之心)을 완전히 잃어 의()를 지키지 못하는 언론이 이 땅에 무슨 소용인가. 기자들이 기레기(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 소리를 들으면서도 저널리즘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죄, 후배들을 올바로 가르치지 못한 죄, 스스로 부끄러움을 모르고 산 죄가 크다. 지금부터라도 제발 뻔뻔한 모습만은 보이지 말자. 세상이 뒤집힌 상황에서도, 나라 말아먹을 장난질로 난리굿을 일으킨 당사자들이 여전히 고개를 빳빳이 들고 싸우자고 대드는 모습이 너무나 역겹다.

 

음모설, 협잡설, 뒷거래설 다 접어놓고라도 한번 물어보자. 그대들이 정녕 기자들인가. 세상에 태어나 기자가 되기로 마음먹었을 때, 기자가 되어 정론 직필’, ‘시시비비정신을 배울 때 꿈꾸었던 이상을 지키고 있는가. 자식들 앞에서 또는 후손들에게 떳떳한가. 누군가 내 편 사람이 대통령이 되기만 하면 금세 대박이 나서 한평생 호사 누리며 살 것 같았는가. 진정한 자존심이 거세된 몇몇 기자들 때문에 세상이 온통 시끄러운 지금처럼, 필자가 기자라는 사실이 부끄러운 적이 평생 없었다.

 

오염된 세상일수록 기자는 샘물, 정화수 역할을 해야 한다. 참다운 애국심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더러운 시궁창에 목까지 담그고 살더라도 돈만 벌면 최고라는 가치관을 지닌 싸구려 기자들이 흐드러졌다. 철이 없어서 무서운 인 줄 모르고 을 휘두르는 게 아니라, 빤히 다 알면서 교묘한 질을 이용해 일확천금에 벼락출세를 꾀하는 '기레기'들이 수두룩하다. 참다운 저널리즘을 다시 살려내야 한다. 최소한 권력에 빌붙어 한탕주의에 빠진 채 천박한 정쟁 장난질의 도구로까지 추락해서는 안 된다.

 

 

안재휘(安在輝)

-언론인/칼럼니스트

-34대 한국기자협회 회장

-()인터넷신문 미디어 시시비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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