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인공지능이 요구에 맞춰 지식·기술을 전수했던 소피스트와 같다”
-“포스트휴먼 시대의 인간 조건을 성찰한다는 것은 인공지능이 가려놓은 실재를 본다기보다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를 묻는 일이다.“
2022년 11월 챗GPT의 상용 버전이 공개된 이후, 생성형 인공지능은 사회경제적 변화의 선두에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어떤 질문에도 척척 답하고 그림을 그려주며 영상을 만들면서 사람들은 진짜 인공지능 시대에 들어섰다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인공지능 기술이 또 하나의 도약을 이루면서 인간과 비슷하거나 넘어서는 일반인공지능 또는 초지능의 출현도 머지않았다는 기대감과 그에 따라 인간은 필연적으로 도태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엇갈리고 있다.
고통과 불평등 속에서도 어떻게 사유해야 인간답게 살 수 있는지를 천착해온 철학자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는 신간 『AI 시대의 소크라테스』(휴머니스트)에서 인공지능 시대에 들어선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 그는 원하는 결과물을 즉각 제공하는 인공지능을 ‘21세기의 소피스트’라고 규정하면서,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바로 ‘소크라테스의 지혜’라고 강조한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이 원하는 답이 아니라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이진우 교수는 인공지능이 인간 지능을 대체할 것처럼 보이는 지금이야말로, 인공지능은 못 하지만 인간은 할 수 있는 질문을 통해 인간 조건과 존재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기계는 생각할 수 있는가? 기계는 느낄 수 있는가? 기계는 의식을 갖고 있는가? 이진우 교수는 이 세 가지 질문을 던짐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인공지능 시대 또는 포스트휴먼 시대의 인간 조건을 성찰하자고 제안한다. 철학적·인문학적 관점에서 인공지능과 인간의 조건을 살펴보는 이 책은, 우리가 인공지능 시대에도 왜 여전히 인간으로 살고자 하며 어떻게 해야 더욱 인간답게 살 수 있는지 그 이유와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돕는다.
이진우 교수는 챗GPT가 상징하는 기술 진보를 구텐베르크 혁명에 못지않은 지성 혁명으로 파악하고, 인공지능 혁명이 불러일으킨 철학적 전환에 주목한다.
인간과 수월하게 대화하는 인공지능은 본격적으로 ‘질문이 돈이 되는 세상’을 열었다. 미래의 인기 직업으로 프롬프트 엔지니어가 꼽힐 만큼 대화형 인공지능에 적절한 질문을 넣는 능력이 중요해지고 있다.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무엇이든 답해주는 인공지능을 잘 활용한다면 돈도 잘 벌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이진우 교수는 현대의 인공지능이 고대 아테네에서 사람들의 요구에 맞춰 지식과 기술을 전수했던 소피스트와 같다고 본다. 실제로 고대의 소피스트는 사람들에게 지식을 전달했지만 정작 지혜는 전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챗GPT를 통해 아무리 많은 지식과 정보를 얻는다 해도 어떻게 해야 더 인간답게 살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당대의 소피스트를 비판하고 무지를 고백함으로써 진정한 지혜를 추구한 소크라테스의 질문이다. 지은이는 인공지능이 생각하는 것처럼, 느끼는 것처럼, 의식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시대일수록 생각, 느낌, 의식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물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 교수는 또한 ‘기계는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며 의식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가-인간에 가까워지는 인공지능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들’에 대해 고찰하고 제안한다.
그는 “인간이 계산으로 단순화된 사고 체계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때, ‘왜?’라는 질문도 사라진다.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가’란 질문은 결국 ‘인간은 생각할 수 있는가’란 질문으로 이어진다”며 “이제 인공지능은 생각을 넘어 공감까지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공지능이 잘하는 것은 인간이 뒤떨어지고 인간에게 능숙한 것은 인공지능이 하기 어려워한다는 ‘모라벡의 역설(Moravec’s paradox)’은 감정이라는 문제로 집약된다. 인간에게는 몸이 있기에 감정을 가졌고 인공지능은 그렇지 않기에 감정에 미숙하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상식이었다. 하지만 ‘감정 인공지능’이 상식을 바꾸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교수는 또 “감정 인공지능은 사용자의 ‘깊은 감정’보다 ‘피상적 감정’에 집중한다. 사용자가 기뻐하면 같이 기뻐하고 슬퍼하면 같이 슬퍼하는 감정 인공지능은 영화 ‘그녀(Her)’가 미리 보여준 인공지능과의 우정과 사랑이 현실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반려 인공지능과의 로맨스에 빠진 사람들은 인간 친구에게서는 얻지 못하는 애정을 느낀다. 인공지능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의 표정과 몸짓 등을 분석해 감정을 판별한다. 포커페이스가 불가능해진 시대에 인간보다 더 잘 공감하는, 진짜와 구분할 수 없는 가짜 감정으로 소통하는 인공지능이 출현하면서 감정이 인간에게 고유하다고 강변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며 도덕성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감정을 인공지능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실은 인간에게 과연 감정이란 무엇인지 묻는다.
“포스트휴먼 시대의 인간 조건을 성찰한다는 것은 인공지능이 가려놓은 실재를 본다기보다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를 묻는 일이다. 우리는 여전히 노동하고 작업하며 정치적으로 행위하겠지만, 인공지능이 노동과 작업, 행위의 의미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도 함께 성찰해야 한다. 왜냐하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의 몫이기 때문이다.”- 1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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