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집 제목 ‘빈’은 뜻 그대로 상실과 결여의 현재형
‘내 문장은 피투성이다’라는 선언, 쓰기의 각오 선연하게 드러내
빈, 하고 네 이름을 부르는 저녁이면/하루는 무인도처럼 고요히 저물고//내 입엔 셀로판지 같은/적막이 물리지//어느 낮은 처마 아래 묻어 둔 밤의 울음/그 울음 푸른 잎을 내미는 아침이면//빈, 너는 갓 씻은 햇살로/반듯하게 내게 오지//심심한 창은 종일 구름을 당겼다 밀고/더 심심한 나는 구름의 뿔을 잡았다 놓고//비워둔 내 시의 행간에/번지듯 빈, 너는 오지 –서숙희 ‘빈’ 전문
포항에서 활동 중인 서숙희(65) 시조시인이 다섯 번째 시조집 ‘빈’(도서출판 작가)을 출간했다. 작가 기획시선 32번으로 출간된 시조집 ‘빈’은 시대에 대한 성찰과 시인이 걸어온 길에 공명한 경험적 진실을 깊이 담았다.
서 시인은 1992년 매일신문·부산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이후 꾸준히 시조 창작 활동을 해왔으며 시조문학의 세계를 꾸준히 탐구하고 현대시조의 서정성을 살려 시조를 써 왔다. 중앙시조대상, 김상옥시조문학상, 백수문학상 등 국내 최고 권위의 시조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조집 ‘빈’은 모두 5부로 나뉘어 총 66편의 시조로 구성됐다. 그는 시인의 말에서 “신새벽 빈 위장에 통째로 욱여넣어도 뱃속이 탈 나지 않는 시”를 쓰고 싶었지만 “여전히 위장을 뒤틀리게 하는 참혹한, 이 시들을”이라고 전한다.
시조집 제목 ‘빈’은 뜻 그대로 상실과 결여의 현재형이다. 그러나 외롭고 쓸쓸한 느낌만 가득하지는 않다. ‘빈’의 또 다른 풀이에는 ‘욕심이나 집착 따위의 어지러운 생각이 없게 되다’라는 기술도 있다. 흔히 마음을 비워야 한다고 표현하는 상황이 그러하다. 무언가를 가득 움켜쥐고 있으면 그것에 휘둘리기 마련이다. 그럴 때 ‘빈’은 헛된 욕망을 경계하는 성찰의 언어로 기능한다. ‘빈’을 둘러싼 다양한 속성을 고려하면, 상실과 결여의 부정성과 긍정성이 모순되지 않음을 알게 된다. 이 양자의 절묘한 균형점이야말로 그가 이 시조집 전체를 어떻게 구성하고 배치하는가를 드러내는 지표다.
표제작 ‘빈’ 외에도 각부마다 눈에 띄는 모던한 작품들이 많다. ‘A4에게’로 여는 제1부는 창작의 고투를 천명한다. ‘내 문장은 피투성이다’라는 선언은 그 자체로 시인으로서 쓰기의 각오가 어떠한지를 선연하게 드러낸다. 또한 ‘몸과 몸 살짝 부딪는 위태로운 소리’(‘와인글라스의 밤’ 부분)나 ‘검은 맨살로 누운 알몸의 바다’(‘판타지 풍으로-영일만’ 부분) 등 관능적인 이미지도 다수 등장해 독자의 시선을 붙든다.
제2부와 제3부에서는 ‘냉장고 토르소’ 외에도 박찬욱의 영화 ‘헤어질 결심’, 윤동주의 시 ‘참회록’, 더블베이시스트 성미경, 박수근전 등 여러 예술의 인유가 녹아 있는 시편들과 밤새 내린 비로 깨끗해진 바깥 광경과는 대조적으로 ‘밤새운 내 문장에는/흙방울/흙방울들’(‘방울들’ 부분)이 굴러다닐 뿐인 상황을 드러내고, 함민복 시를 패러디해 “시는 왜,/시는 왜 짠가”(‘시는 왜 짠가’ 부분)라고 물으며 시 쓰기에 대한 반성을 거듭하면서 상실과 결여에 대처하는 시적 주체의 성숙한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제4부는 지금 세태를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시적 주체의 발화가 특징적이다. 버려진 지구본을 보면서 ‘이미 녹은 빙하가 탁한 피로 엉기어/적도까지 내려와 신음으로 굳어버린’(‘지구는 지금’ 부분) 기후 위기에 봉착한 현재를 적시하는 작품, 도로 건설을 목적으로 산이 파헤쳐진 장면에서 ‘우르르 쏟아지는 내장’(‘산의 몸통이 잘렸다’ 부분)을 목격하는 작품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헬조선’을 저주하고 ‘이생망’을 자조하는 ‘비정규직’ 젊은이들을 초점화한 ‘행운목은 행운이다’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들 시조는 서숙희의 시야가 내부로만 침잠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증한다.
제5부는 기억이 중심에 놓인다. ‘갈래머리 소녀들/푸르게 깔깔댈 때’(‘청라언덕’ 부분)를 회고하는 작품부터, 저마다의 기억을 품은 채 ‘혼곤히 맑은 잠에 드는/고분고분 고분들”(‘고분고분 가을 고분’ 부분)에 이르는 시조가 무게중심을 잡는다. 그중에서도 손톱깎이와 어머니의 지난날을 결부시키는 ‘어머니의 손톱깎이’는 어머니를 주제화하는 많은 시가 빠지기 쉬운 과도한 센티멘털리즘에 빠지지 않음으로써 ‘손톱깎이’라는 객관적 상관물을 통한 시적 대상과의 적절한 거리를 마련하는 시인임이 여기서도 검증된다.
허희 평론가는 해설에서 “감당하기 힘든 무거움에 매몰되지 않아, 도리어 그녀의 작품은 내용 형식적으로 경쾌함과 진중함을 가로지르는 분할선을 구축하였다. 그래서 사용자의 주문에 따라 언어를 도구처럼 부리는 생성형 인공지능이 상용화된 2020년대에도 서숙희의 시조집은 설 자리가 있다. 경험적 진실의 깊이를 담보한 채 율격을 정립하면서도 파격을 시도하는 시적 작업을 생성형 인공지능은 온전히 수행하지 못한다. 그것을 일컬어 시조의 현대성이라고 할 수 없다면, 대체 무엇이 모던한 스타일이 될 수 있을까”라고 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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